Apple Keyboard with Numeric Keypad

2017. 3. 11. 22:31Journal/INTroduCE

 애플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감성과 아름다움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고급스러운 재질과 디자인이라 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완벽한 설명을 하기엔 부족하다. 애플의 감성은 미니멀리즘에서 비롯된다. 미니멀리즘이란 최소한의 요소만 사용하여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적용한 걸 말한다. 즉 꼭 필요한 것만 넣어 놓고 다른 건 전부 빼버리는 극단적인 디자인이다. 당장 아이폰을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즉시 이해가 갈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 디자인 부분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바로 애플 디자인을 총괄하는 조나단 아이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플 제품들은 미니멀리즘적 디자인이 강하게 느껴진다. 미니멀리즘도 장단점이 있는데,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적용된 물건들은 대체로 세련되어 보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빼버리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불편하고 귀찮은 부분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단 사용하게 되면 의외로 잘 사용하는 자신을 보고 묘한 기분이 든다. 월터 아이작슨이 말하던 "현실 왜곡장"이 애플 제품에도 알게 모르게 적용되었나 보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대규모 사과 농장으로 확장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 분위기에 힘입어 다음 폰은 아이폰으로 갈 듯 하다.

 애플 특유의 감성이 가장 잘 드러난 제품이 있는데, 아이맥도, 맥북도, 아이폰도 아닌 바로 키보드다. 요즘 유행하는 기계식 키보드도 아니고 그 비싸다는 무접점 키보드도 아니다. 그냥 아이맥을 구매할 때 번들로 주는 펜타그래프 키보드일 뿐이다. 그러나 애플에서 디자인한 키보드라 가격은 무척 비싸다. 애플 공식 홈페이지나 오프라인 샵에서 59,000원 정도 하는데 이걸 살 돈으로 휘황찬란한 레인보우 LED가 지원되는 기계식 키보드를 하나 사올 수 있다. 갬-성 넣어서 뻥튀기한 애플 프라이스는 알아줘야 한다. 애플에서 만든 여러가지 키보드가 있긴 한데, 본 글에서 소개할 키보드는 2007년도에 출시된 '숫자 키가 달린 애플 유선 키보드'다. 3년 전에 지인이 빌려줘서 잠깐 써본 적은 키보드였는데, 이렇게 비쌀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이 키보드, 출시 후 10년동안 리뉴얼이 된 적이 없다, 지금도 좋은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어서 상관 없긴 하다만... 최근에 리뉴얼된 매직 키보드 2의 레이아웃과 비교해 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디자인적으로는 이미 완성이 되어 있다. 3월 6일, 점점 봄 기운이 몰려오는 가운데 판교에 놀러간 김에 직거래 잡아서 싸게싸게 3만원에 구매했다.

First Look.

 애플 유선 키보드를 처음 보았을 때, 애플답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평소 하얀색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애플답게 하얀색으로 키캡을 만들었다. 그리고 키보드 몸체는 애플이 좋아하는 두번째 재료인 산화처리된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꽤 견고해서 괴한이 침입했을 때 후려갈겨도 안 망가질 것만 같다. 알루미늄 판 하나를 통짜로 깎아서 만든 유니바디 맥북 프로처럼 애플 키보드 또한 알루미늄 판을 CNC 밀링으로 깎아서 만들었다.

 필자가 구매한 건 국내판 키보드다. 국내판 키보드라고 하지만 사실 미국판과 큰 차이점은 없다. 차이라면 알파벳과 한글이 같이 병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필자는 한글 인쇄도 보기 싫어서 영문판을 구매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영문판은 한글 키보드를 사자마자 매물이 나왔다. 자금만 있다면 영문판을 사고 한글판을 팔까 고민 중이긴 하다.


 버튼의 완성도는 돋보인다. 그러나 특정 부분의 경우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그러나 이걸 디자인한 게 애플이다 보니 여백을 철저히 의도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애플 키보드을 보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이라 하면, 유난히도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스페이스바라고 말할 수 있다. 애플 키보드를 쓰기 직전에 사용했던 키보드는 애플의 영원한 경쟁사,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Comfort Keyboard 3000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꾸준히 밀던 인체공학 디자인이 적용되어 키보드의 가운데로 갈 수록 볼록하게 올라오는 묘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깔끔해 보이는 키보드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키보드다 보니 macOS에서 사용할 때 거슬리는 부분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한자 키가 있는데, 윈도우 키를 눌러야 할 때마다 한자 키가 눌려서 짜증이 몰려오는 경우가 잦았다. 이전에 쓰던 Thinkway Tiny MECH(링크)의 경우, 미국 키보드 레이아웃이랑 동일했기에 잘만 사용했다. 만약 타이핑하는데 불편하지 않았다면 필자는 아마 애플 키보드를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글 레이아웃에 질려버린 후, 알게 된 긴 스페이스바의 묘미는 정말이지 환상적이다.

 키보드의 밑면은 상판의 키캡과 마찬가지로 그냥 하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애플의 하얀색 사랑을 다시끔 확인할 수 있었다. 한가운데에 음각으로 애플 로고가 새겨져 있고, 사과 로고 바로 위엔 시리얼 넘버가, 아래엔 각종 인증 마크 및 모델명이 인쇄되어 있다. 왠만한 키보드애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는 기울기 조절을 위한 걸쇠는 없다. 디자인 때문에 편의성을 희생한 걸 보니 참으로 애플답다.

 애플 키보드의 받침대는 평범한 받침대가 아니다. 양 옆의 공간엔 USB 포트가 달려 있어 간단한 허브 역할도 한다. 그러나 지원하는 규격이 USB 2.0인지라 고전력을 요구하는 USB 3.0 장비를 끼우기엔 부적절하다. 고로 애플 마우스나 USB 리시버, 간단한 SD카드 리더기 등을 끼워서 사용하면 좋다. 애플 마우스의 선 길이가 대체로 짧은 걸 생각하면 진짜로 마우스 끼우라고 만든 단자 같다. 필자는 기존에 사용하던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를 우측에 끼워서 사용하고 있다. 애플 마우스도 써봤지만, 솔직히 애플 마우스보다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가 훨씬 완성도가 높다. 괜히 하드웨어 명가가 아니다.

 요즘 키보드처럼 휘황찬란한 백라이트는 들어오지 않지만 특정 키에 한해서, LED가 지원되는 키가 있다. 바로 'Caps Lock'키다. 키가 활성화되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초록빛 불이 들어왔는지 보면 된다. 차기 개선판엔 Caps Lock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키에도 백라이트 LED를 넣어줬으면 좋겠다. 모니터 불빛에 의지해서 더듬거리면서 키 누르는 건 번거롭다.

 키보드 하면 키감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래도 컴퓨터 주변 기기 중에서 신체와 가장 자주 접촉하는 물건이니만큼 손애 피로를 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애플 키보드의 경우, 디자인에 걸맞지 않은 좋은 느낌을 준다. 키 자체는 얇지만 마치 ThinkPad 키보드에서 느낄 수 있던 깊은 느낌이 손가락에 묵직하게 전달된다. 기계식만큼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키보드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글을 써도 그다지 피로가 쌓이지 않는 느낌이 든다. 당장 3월 6일 이후로 발행된 모든 글들은 애플 키보드를 통해 작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애플 키보드의 키감이 맥북의 내장 키보드와는 다른 느낌이다. 맥북 프로의 내장 키보드는 살살 다뤄야 할 거 같은 연약함이 느껴진다면 애플 유선 키보드는 조금은 거칠게 나가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 하다. 요근래 사용한 멤브레인 키보드 중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물건이다. 기회가 된다면 알프스 축을 사용한 구형 애플 키보드도 사용해보고 싶다.

Conclusion.

 전역한 후, 2016년 11월부터 구성해온 책상 리뉴얼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처음엔 작업하는 게 귀찮았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마무리를 목전에 둔 지금, 정말이지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추가로 영입할 장비들이 몇 개 더 있을 예정이지만, 괄목할 정도로 바꿀 생각은 없다. 이미 이렇게 구성하기 위해 들어간 시간과 비용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비용이 허락한다면 책상에 고급져 보이는 벨벳이나 알루미늄 패드를 깔고 싶다. 일단 애플 키보드을 영입하고 기타 등등의 작업이 마무리된 관계로 5번째 리뉴얼은 끝났다

 키보드는 단순한 입력장치를 넘어 자신을 나타내는 아이덴티티화되고 있다. 단순히 공장에서 찍어낸 기계식 키보드가 아닌 무지개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며 커스텀 키캡을 장착한 깔끔한 키보드들은 기성품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한정판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 체리 사의 기계식 키보드 특허가 풀린 관계로 고급 키보드의 영역에 있던 기계식 키보드들이 점점 대중들에게 보급화되며 점점 다채롭고 독특한 키보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때 글쟁이었던 필자로서는 좋은 키보드가 보급되고 있는 지금이 만족스럽다.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로 기계식 키보드를 잠시 방출했지만, 추후에 영입할 생각은 있다. 만들고 싶은 키보드가 있기 때문이다. 커스텀 키보드 완성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키보드를 방입하더라도 현재 사용하는 애플 키보드 방출은 안 할 생각이다. 멤브레인 치고 좋은 키감을 가지고 있는 키보드를 찾기란 어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