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Bitdo - Retro Mechanical Keyboard

2023. 11. 5. 16:00Journal/RE:Vu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삶은 쉽지 않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서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고 쌓아둔다. 동시에 줄어드는 방 공간과 지갑을 보며 한숨이 나오지만 채워지지 않은 공허를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게 된다. 필자는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는 맥시멀리스트다. 물론 진성은 아닌데 주변 분들이 방에서 이상한 게 빈번하게 튀어나온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이번에도 쓸데없는 것 같으면서도 꽤 감성 넘치는 물건을 어쩌다 보니 하나 사게 되었다.

 8Bitdo라는 회사에 대해서 예전 글에서 한번 소개한 적이 있었다. 수상하게 빈티지 게이밍 장비를 현대적으로 잘 만드는 중국 회사인데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규모를 확장했다. 어느 날,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빈티지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기계식 키보드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자마자 오우 쉣 이건 사야 해! 모드로 들어가 버렸다. 물론 가격이 문제였기에 정식 출시가 된 이후에도 손가락을 빨고 있었는데, 52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올라온 걸 보자마자 눈이 돌아가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결제창을 보고 있는 필자가 있었다. Qoo10(필자가 산 샵)에서 페이팔 잔액으로 구매해서 체감상 비용은 0원이었다. 국내 쇼핑몰들도 페이팔을 지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사라질 때쯤, 키보드가 필자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Unboxing

 거대한 비닐이 필자의 작업실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허겁지겁 비닐을 해체하니 키보드 박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카... 키보드 디자인 보소... 박스 디자인 자체는 특별하진 않았다. 그러나 키보드 이미지가 들어감으로서 완성되었다. 디자인의 중요성이다.

바닥부에는 구성품과 키보드의 특징, 세부 스펙, 인증 등이 인쇄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벌써 설레기 시작했다.

 후면엔 아무런 특징이 없다. 그저 바닥일 뿐이다. 디자인을 설렁설렁 한 흔적들이 보이지만 필자의 마음을 모처럼만에 흔든 물건을 만들었으니 충분히 용서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비닐을 벗기고 박스를 들어올리면 8Bitdo Retro Keyboard가 비닐에 쌓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포장 비닐은 싸구려 비닐이 아닌 고급 반투명 비닐을 사용했다. 패키지 박스에는 힘을 빼고 수상하게 내부 포장에 진심인 모습이다.

 키보드 모습은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고, 다른 구성품들을 먼저 확인해 보기로 했다. 키보드 밑에는 Retro Mechanical Keyboard의 특징 중 하나인 Dual Super 버튼과 꾸밀 수 있는 스티커, 유선으로 사용할 수 있는 A to C USB 케이블 3M, 그리고 간단 사용 매뉴얼과 정식 매뉴얼, QC 통과 인증서가 같이 들어 있었다. Dual Super 버튼을 제외한 다른 구성품은 손도 대지 않았다.

 이제 키보드 본체를 확인할 시간이다. 비닐에 감싸져 있는 키보드를 한번 경건한 마음으로 열어보도록 하자.

Design

 비닐을 뜯었고, 키보드를 꺼냈다. Retro Mechanical Keyboard라는 이름에 알맞게 약간은 색이 바랜 듯한 회색 플라스틱 바디에 빈티지한 색 배열의 키캡, 그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노브들이 필자를 맞아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키보드를 꺼내면서 수없이 감탄했다. 처음 공개된 사진을 보았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까지 빈티지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실물이 미쳐 날뛰는 키보드다.

 키 배열은 87키, MDA 스타일의 PBT 키캡을 사용했다. 각인의 경우는 따로 설명이 없지만 염료 승화 방식을 사용한 듯하다. 일반적인 기계식 키보드들이 체리 스타일의 키캡을 사용했기에 약간 높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빈티지한 느낌을 살리기에는 이만한 배열이 또 없다.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 생각보다 진심이다.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는 총 2가지 색 배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Famicom의 색 배열을 가져온 붉은색과 금색 조합, 그리고 필자가 구매한 NES의 색 배열을 가져온 회색과 붉은색의 조합이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NES 스타일이 더 좋아서 NES 스타일을 구매했다. 필자의 지인분은 Famicom 스타일을 구매했는데, 이건 또 이거대로의 맛이 있다. Famicom 스타일 키보드에는 히라가나 각인이 되어 있어 짙은 일본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점도 포인트다. 하단에는 필자의 지인이 구매한 Retro Mechanical Keyboard, Famicom 모델의 사진을 접은 글로 첨부해 놓았다. 사진 사용을 흔쾌히 허락해 준 メ 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8Bitdo는 옛 감성을 잘 살리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키보드에도 이렇게까지 잘 살릴 줄은 몰랐다. 군데군데에 감성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이 전원 LED를 보라. 전원 LED가 작고 빨갛게 빛나는 게 너무도 아름답다.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마감이 잘 되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바로 옆에 숨어 있는 캡스락 및 스크롤락 인디케이터도 매력적이다.

Feature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는 카일 사의 박스 백축을 사용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통울림이 있는 편이다. 스위치 핫스왑을 지원하고 있기에 만일 스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꿀 수도 있다. 클릭감이 있는 백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커뮤니티에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필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 사용하던 키보드들이 대부분 이런 느낌이었다. 8Bitdo는 그 감성까지 구현한 걸까?

 그 밖에도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에는 눈여겨볼만한 기능이 여럿 있다. 좌측 상단에는 노브 2개와 버튼 3개가 있다. 좌측의 버튼은 블루투스 / 전원 Off / 2.4GHz 리시버 선택을 할 수 있는 노브다. 블루투스 및 2.4GHz 리시버 쪽을 사용하려면 그쪽으로 노브를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노브를 돌리는 감각이 되게 빈티지해서 최고다. 전원 Off 상태에서는 유선 연결로만 사용할 수 있다.

 옆의 3개 버튼들은 블루투스 페어링 버튼, 매크로 버튼, 그리고 프로필 버튼이다. 매크로 키를 누르고 원하는 키 매크로를 자판 하단의 A/B 버튼이나 Dual Super 버튼에 매핑할 수 있다. 프로필 버튼은 8Bitdo 전용 프로그램에서 만든 프로필을 활성화/해제하는 버튼이다. 다만 현재는 전용 프로그램이 macOS에 출시되지 않은 상태라 필자는 지인의 컴퓨터에서 미리 macOS 전용 프로필을 만들어 macOS에서 사용하고 있다.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 후면에는 정체불명의 3.5파이 포트와 USB-C 포트, 그리고 2.4GHz 리시버를 수납 가능한 보관대가 있다. 정체불명의 3.5파이 포트들 위에는 ABXY라는 어딘가 친숙한 글자가 있는데,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의 특징 중 하나인 Dual Super 버튼을 연결할 때 사용한다. 즉 Dual Super 버튼을 총 4개 연결해서 쓸 수 있다.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 바닥부는 평범하다. 그런데 요즘 키보드라면 있어야 할 것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바로 높이 조절 스탠드다. 즉,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는 높이가 고정되어 있다. 이 부분은 단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필자는 키보드 높이 조절을 하고 사용하는 편이 아니기에 바로 스루 했다. 

 2.4GHz 리시버를 수납할 수 있는 부분은 자석으로 되어 있어 리시버가 들어가면 꽉 고정된다. 세세한 곳에 배려를 해 놓은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다.

 2.4GHz 리시버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이렇게 불이 들어온다.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라 괜찮다.

Dual Super Button

 키보드도 키보드인데, Dual Super 버튼을 빼놓고 가면 섭섭하다. 키보드 뒤쪽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Dual Super 버튼은 필자가 제일 기대했던 기능 중 하나다. 실제로 받아봤을 때 묵직하면서도 눌리는 감각이 꽤 인상적이었다. 카일 녹축이 사용되어 키보드의 버튼보다 더욱 묵직한 느낌을 구현한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Dual Super 버튼을 자주 쓰진 않을 듯하다. 가장 먼저 유선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과, 매크로 키를 자주 쓰지 않는 필자의 환경에서는 부적절했다. 이게 USB로 연결하는 방식이었다면 진짜 적극적으로 썼을 것 같은데 너무 아쉽다.

Sound Test

 기계식 키보드를 샀으니 제일 중요한 건 타건하는 영상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타건음을 한번 필자의 마이크로 담아보았다. 레코딩은 Aston 사의 Element를 사용하였고, 필자의 메인 오디오 인터페이스, BabyFace Pro를 통해 받았다. 약간 사선으로 소리를 받았기에 주변에서 들었을 때 이 정도의 소리가 난다는 점 정도로 참고해 주면 좋을 듯하다.

Conclusion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를 짧은 시간이지만 최대한 심도 깊게 사용해 보았다. 지금 보고 있는 리뷰는 전부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로만 쓰였다. 리뷰를 쓰면서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의 특징이나 장단점 같은 경우를 어느 정도 파악했고, 윗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지막으로 정리해볼까 한다. 물론 아래의 장점은 필자가 생각하는 개인적인 장단점이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의 장점은 디자인이다. 특유의 레트로한 디자인은 누구도 따라올 회사가 없다. 물론 정말 빈티지한 옛 키보드들을 찐 감성적으로는 이기긴 어렵겠지만 옛 콘솔 게임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거만 한 키보드는 없다고 확답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점은 키감이다. 2016년에 처음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한 이래 필자는 다양한 기계식 키보드들을 타건 해보고 사용해 왔다. 필자의 지인 중에 키보드 덕후가 있어서 자주 조언도 들었고, 필자도 다양한 축을 사본 적도 있어서 한 중하위급의 기계식 덕후 레벨은 된다고 생각한다. 기계식 키보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컨셉"이라고 생각한다. 기계식 키보드 붐이 한번 일었고, 지금도 꾸준히 커스텀 키보드 시장이나 일반적인 컨슈머 시장에서 기계식 키보드가 난립하고 있는 지금, 결국은 키보드의 컨셉과 설계 방향을 더욱 중요하게 보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컨셉" 부분에서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는 굉장히 컨셉을 완벽하게 지킨 키보드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엔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는 통울림이니 소음이니 그런 것들의 개념이 명확히 자리잡지 않은 90년대 이전의 키보드를 충실하게 재현했다고 보고 있다. 마침 필자는 그 시대의 키보드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세대기 때문에 처음 타건 해보고 나서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 이런 복고적인 컨셉을 가지고 있는 키보드에 통울림을 잡기 위해 추가적인 세팅을 한다거나, 혹은 내부에 흡음재를 넣는다거나 하는 모딩은 적어도 필자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소리가 찰칵찰칵 나면서 타자는 치는 행위부터가 즐거운 키보드. 이게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자에게는 Dual Super 버튼이 단점으로 다가왔다. 컨셉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편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매크로 키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가 참 애매했다. 만일 필자가 매크로 키 조합을 자주, 그리고 많이 사용했다면 Dual Super 버튼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듯하다. 그러나 지금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활용법은 디스코드 음성채팅 눌러서 말하기 혹은 거대한 엔터 버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3.5파이로 본체에 직접 연결하는 방식도 필자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이 잘 박스에 모셔두었다. 추후 USB 버전이 나온다면 적극적으로 구매할 생각은 있다.

 8Bitdo Retro Mechanical Keyboard는 컨셉만 맞다면 확실히 사람에 따라 좋은 키보드가 될 수 있다. 디자인도 완벽하고 특유의 찰칵거림에 마음을 이끌리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리 때문에 섣불리 이걸 구매해야 하나 하고 망설이는 분들도 있을 듯하다. 만일 내가 레트로 게임들을 좋아하고 키보드에도 관심이 있다면 절대로 안 살 이유가 없다. 필자에겐 너무나도 마음에 들고 좋은 키보드다. 진짜 모처럼만에 좋은 지름을 한 것 같아 너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