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ringer UM2

2021. 11. 7. 18:00Journal/Musical Gear

 다양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주는 "다이소"라는 가게가 있다. 적당히 쓰기 좋고 가격도 비싸 봤자 만원 이하여서 막 쓰고 버릴 물건들을 사기에 좋은 가게다. 실제로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브랜드라 필자도 매우 자주 이용하고 있다. 다이소에서 파는 소재료를 이용해서 적당한 수준의, 가끔은 매우 튼튼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저렴하고", "적당히 굴리다 버리는"이라는 특징들에 주목한 사람들은 다이소라는 단어를 고유 명사화하여 다른 브랜드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가령, 어느 회사의 제품들이 저렴하고, 다양하고 쓰기 좋지만 업그레이드 비용이 지속적으로 든다면 "그 회사는 XXX계의 다이소야"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매우 높은 제품들이 즐비할 거 같은 음악 장비 업계에서도 놀랍게도 다이소처럼 박리다매를 추구해 "음악 하드웨어의 다이소"로 불리는 브랜드가 존재한다. Music Tribe 산하의 음향장비 회사, Behringer가 바로 그렇다.

 Behringer(이하 베링거)는 음악 하드웨어의 다이소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다이소처럼 온갖 장비를 다 만든다. 마이크에서부터 신디사이저, 모니터 스피커, 라이브 콘솔, 프리앰프 등 음악 장비에 존재하는 모든 건 다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음향 장비라면 잡다하게 다 만들지만 기술력이 부족하진 않다. 박리다매를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면 다른 회사를 인수 합병해 산하 브랜드 및 기술을 반영해서 더욱 좋게 만들어낸다. 마이크 프리앰프 중 마이다스 라는 프리앰프 회사가 있었다. 좋은 가격에 훌륭한 성능을 가지고 있던 프리 앰프라 예전부터 음악을 했던 사람이라면 익숙한 브랜드일 거다. 그런데 이 회사를 베링거가 인수 합병하여 자사 오디오 인터페이스 및 디지털 믹서에 적용했다. 비유를 하자면 막 시장에 진입한 샤오미가 스마트폰 업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HTC를 인수 합병한 셈이다. 의외로 이런 식으로 인수 합병한 브랜드들이 꽤 많은데, TC Core로 이름을 날리던 TC Electronic 역시 베링거의 모그룹 Music Tribe 소속이다.

 베링거라는 브랜드에 대해 음악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다이소처럼 천차만별이다. 일부 제품들은 진짜 가격과 성능을 동시에 잡은, 이른바 미친 가성비를 가진 제품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성능이 영 좋지가 않다. 거기에 최근 들려오는 뉴스들은 베링거라는 브랜드의 기업윤리를 의심하게 만드는, 약간은 씁쓸한 브랜드다.

 필자가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할 제품은 베링거에서 만드는 오디오 인터페이스 라인업의 최하위에 위치한 모델이다. 모델명은 U-Phoria UM2로, 같은 U-Phoria 브랜드의 입문기 역할을 담당한다. Focusrite의 Scarlett Solo와 같은 포지션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가격은 정말 미친 수준인데, 신품 가격이 6만원 언저리에 위치해 있다.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6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고? 정말 미친 가격이 아닌가! 필자는 이 제품을 공용 컴퓨터에 사용하기 위해 구입했는데, 박스 상태가 좋지 않은 제품을 단돈 37,000원을 내고 가져왔다. 웬만한 플러그인보다 저렴한 음악 장비인 셈이다. 성능이 어떨지 궁금해서 며칠 각을 재다가 결국 샀다. 오랜만의 내돈내산이다.

Unboxing

 UM2 박스 디자인은 베링거가 가지고 있는 표준 박스 디자인을 따라간다. 깔끔한 하얀색 배경에 제품 사진, 그리고 모서리의 베링거의 포인트 컬러. 깔끔하고 보기 좋다. 독특한 박스는 아니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좋은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좌측 하단의 QR코드는 베링거의 제품 페이지로 연결된다. 

 박스 뒷면에는 UM2 뒷면에는 어떤 포트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끔 제품 사진을 인쇄해 놓았다. 최하위 라인업이라 아웃풋이 XLR이나 TRS 포트가 아닌 RCA인 점이 눈여겨볼만하다. 그러면서 팬텀 파워는 제공하는 게 매우 아이러니하다. 스칼렛 솔로도 이런 구성이니 최하위 라인업들은 어느 정도 공통점을 공유하는 듯하다.

 상단에는 제품의 사이즈와 시리얼 번호 등이 붙어 있다. 특이한 점으로는 중국어로 제품 설명이 적혀 있는데, 베링거의 공장이 중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별 의미는 없긴 하다. 가격이 용서해준다.

 박스를 개봉하면 다음과 같이 튼튼하게 포장된 오늘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낸다. 상단의 버들에 맞춰 스티로품을 파 놓은 게 매우 인상적이다. 저가형 치고는 생각보다 완충이 잘 되어있어 놀랐다. 

 구성품은 매우 단출하다. USB A to B 케이블, UM2 본체, 그리고 통합 설명서가 끝이다. 필요한 건 다 준다. 신기방기 하다.

Setting?

 세팅이라고 거창하게 적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Behringer UM2는 "오디오 인터페이스"라고 부르기엔 매우 애매하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오디오 카드에서 지원하는 샘플링 레이트가 동급 대비 매우 떨어진다. Behringer UM2의 최대 샘플링 레이트는 48kHz / 24Bit다. 일반적인 오디오 인터페이스들이 96k/24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성능이 떨어지는 셈이다. 요즘 장비들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까지 48/24가 최대라는 점은 이 제품의 타깃이 누굴 향한 것인지 조금 의심스럽다. 그리고 가장 큰 두 번째 이유. 음악 작업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프로토콜, ASIO를 지원하지 않는다. 때문에 Behringer UM2는 XLR 입력을 지원하는 그냥 사운드 카드다. Behringer UM2로 음악 작업을 하려면 "ASIO4ALL"이라 불리는 일반 사운드 카드를 ASIO처럼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별도 드라이버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웃긴 점은 UM2의 바로 윗 모델인 UMC202HD은 ASIO 드라이버를 지원한다. 싼 게 비지떡임을 알 수 있다. macOS라면 CoreAudio로 연결되기에 조금 더 편리할 듯하다. 아무튼 ASIO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Behringer UM2는 딱히 세팅할 것도 뭣도 없다. 그냥 컴퓨터에 꽂고 쓰면 된다.

Test

 ASIO도 없는 그냥 사운드카드 취급인 UM2지만, 의외로 사운드 출력은 준수하다. HD600 정도는 조금 게인을 많이 주면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헤드폰 출력과 스피커 출력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점 중 하나다. 가격 생각하면 납득할만하지만... 필자는 서브 컴퓨터의 내장 사운드카드를 대체할 목적으로 UM2를 구매했는데, 스피커에 물려서 며칠 들어봤는데 무난한 수준이다. 가격을 생각하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당연지사다. 하드웨어 마감은 생각보다 준수했다. 4만 원짜리라는 걸 생각해도 완성도는 준수하다. 딱히 유격도 없고, 상단의 노브를 돌릴 때 특별히 문제 되는 부분도 없었다. 다만, 6.3mm 헤드폰 입력이 단자를 조금 가린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총알 잭들은 마치 단선된 것처럼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HD600의 단자를 꽂으니 아무런 이상 없이 작동했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총알 팁들이 싸구려여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Conclusion

 Behringer UM2는 가격 대비 만족도 하나는 좋았다. 이거 하나만 믿고 음악 등 전문적인 작업을 하기엔 부적합한 요소들이 꽤 있지만 간단한 팟캐스트 레코딩이라던가 디스코드용 사운드 카드가 필요한 거라면 이거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XLR/TRS 콤보잭이 적용된 오디오 카드를 4만 원 대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Behringer UM2를 추천하는가? 하면 아니다. 가격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그 밖에는 모든 게 단점이다. 차라리 이거 살 바에는 바로 상위기종인 UMC202HD를 추천한다. 이렇게 비추천하는 이유는 일단 이 녀석이 "오디오 인터페이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오디오 인터페이스면서 ASIO도 지원하지 않는건 말이 안된다.

 위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씹고 뜯고 맛보고즐기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Behringer UM2는 바로 옆에서 충실히 사운드카드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히려 하드웨어 볼륨 노브가 생겨서 볼륨 조절할 때 매우 편해졌다. 당분간 방출할 일이 없을 듯 하다. 추후에 컴퓨터를 바꾸지 않는 이상은 계속 가지고 갈 거 같다. 근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위에서 말했지만 UMC202HD를 사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