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6. 14:59ㆍJournal/RE:Vu
사운드 엔지니어의 가장 큰 고충 중 하나는, 자신이 작업한 작업물이 어느 이어폰에서도 균일하게 들리게끔 조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평탄하게끔 음원을 작업해야 하고, 다양한 장비에서 모니터링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작업실에는 HD600과 ATH-m50X, 그리고 애플 이어팟 등의 다양한 모니터링 헤드폰 및 이어폰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니터링에서의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는 동생에게 추천해주었던 이어폰 브랜드, "소니캐스트"의 dirac이 문득 생각났다. 기존의 다이나믹 드라이버의 구조를 개선한 "SF 드라이버"를 사용한 최초의 이어폰이고, 발매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사전예약 매물이 타 전량 매진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어폰이기도 하다. 마침 밀폐형 이어폰을 마침 하나 사야 해서 과감히 카드를 들었다.
direm E3은 소니캐스트에서 제작한 3세대 SF드라이버가 사용된 이어폰이다. 이번 모델부터 네이밍이 dirac이 아닌 direm으로 바뀌었는데, 무선 이어폰으로 출시된 direm HT1과 모델명을 맞추기 위해 조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니캐스트에서는 "세계 최초 음향 표준 이어폰", "국내 음향공학 박사, 이신렬 박사의 신작", "하만 점수 84점을 받은 유일한 유선 이어폰" 등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홍보대로라면 정말 완벽한 이어폰이었기에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아는 동생 역시 필자가 이것을 산다 했을 때 적극 추천해줬을 정도니 말이다. 검색을 하니 direm E3 말고도 Direm X KASA 에디션도 있었는데, 한국음향협회(KASA)에서 음 튜닝을 담당하여 보다 스튜디오 환경에 최적화되었다고 설명한다. 가격은 같은 시기에 출시한 direm E3보다 2만 원이 비싸지만, 연장 케이블 및 전용 파우치가 동봉되며, 음향을 공부하는 학생 및 음향 종사자에 한해 먼저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일반적인 direm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기에 E3을 선택하였다. 오픈마켓 기준으로 direm E3은 전작인 dirac MK2(29,800원)보다 만원 정도 비쌌지만 디락의 이름을 믿고 쿨하게 38,300원을 결제했다.
First Look.
패키지 디자인은 단순하고 깔끔하다. 이어폰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도록 배치된 투명 패키지와 하늘색 색상의 조화가 마음에 쏙 든다. 그러나 어딘가 원가절감이 느껴지는 패키지이기도 하다. 2세대 이어폰인 dirac MK2의 경우 깔끔한 박스 포장이었던 걸 생각한다면 direm E3은 전작보다 일반 사용자들에게 어필하려는 이어폰임이 느껴졌다.
패키지의 뒷면에는 제품의 스펙과 개발자 이신렬 박사의 싸인 등이 인쇄되어 있다. 제조국을 보니 중국인데, 설계는 한국에서 하고 외국에서 조립 및 생산을 하는 구조인 듯하다. 이전부터 direm 시리즈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인 좌우 유닛 편차가 맞지 않는다는 문제는 아마도 이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필자도 '제가 산 것은 부디 양품이길' 하며 조용히 마음 속으로 빌었다.
패키지의 옆면 역시 핵심 컬러인 하늘색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옆면만 보았을 때, direm만 적혀 있어 차후 다른 direm 시리즈가 나왔을 때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지만 무언가 2% 부족한 제품 디자인이다.
패키지를 감싸고 있는 포장을 벗기고, 개봉을 하려는 찰나, 감쪽같이 숨어있는 또 하나의 개봉 씰을 발견했다. 패키지에 알맞게 포장된 비닐과 더불어 개봉 전 최후의 보루인 것처럼 붙어있는 스티커 덕분에 이 제품이 완전한 새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개봉 씰을 떼고 겉을 감싸고 있는 플라스틱 덮개를 들어내면 이어폰 본체 및 구성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1차 실망을 했는데, 무언가 포장 방식이 4만 원이나 하는 이어폰이기보단 2만 원 초반대의 이어폰이란 느낌을 받았다. 본체의 성능에 전부 투자해서 박스에 원가절감을 이뤄냈다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언발란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폰을 꺼내는 도중, 필자는 두 번째로 크게 실망했다. 왜냐하면 마이크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이어폰 선을 억지로 구부려서 포장한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어폰을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마이크 부분 뒤쪽에 공간이 있어 케이블이 그 사이로 끼워져 있는 구조인 줄 알았다. 그러나 꺼내고 보니 공간은 없었고 그냥 케이블째로 구부러져 있었다. 케이블을 구부릴 경우, 추후 있을 단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저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전에 발매했던 dirac MK2의 경우 케이블을 구부리지 않고 원형으로 말아서 포장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 본다. 케이블이 약간 뻣뻣한 탓인지 아직도 마이크를 강조하기 위해 구부러졌던 선은 글을 작성하고 있는 현재도 아직 구부러진 흔적이 남아있다. 차기작에서는 포장에서 발생하는 단점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direm E3의 구성품은 간단하다. 사용 설명서와 이어폰 본체, 그리고 호평받은 Orza 이어팁이 전부다. 이어팁의 경우 기본적으로 중간 사이즈가 끼워져 있다. 귀에 맞지 않으면 저음역대가 사라진 것처럼 새어나갈 수 있으니 자신의 귀에 맞게 바꿔 끼우자.
direm E3은 특이하게 L자형 커넥터부터 중간까지는 직조 케이블을 사용했지만, L/R로 분기되는 부분은 일반 케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오른쪽에 자리 잡은 마이크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이크가 있는 부분의 케이블 내구도가 직조 케이블을 사용한 부분보다 더욱 떨어질 거 같다는 우려가 든다.
direm E3의 유닛은 금속 재질로 되어 있다. 앞에는 SF 드라이버를 사용했음을 알리는 SF 로고가, 뒤에는 하이 레졸루션 기준을 대응한다는 뜻의 Hi-Res가 인쇄되어 있다. 또한 케이블 및 유닛에 크게 L/R 표기가 되어 있어 좌우 구분을 명확히 할 수 있다. 물론 필자는 마이크 위치로 좌우 구분을 한다. 마이크는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이어캡을 벗기면 드라이버 쪽으로 이물질 유입을 막는 철망이 보인다. 철망은 생각보다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어 웬만한 이물질들은 걸러낼 수 있다. 솔직히 좀 놀랐는데, 6만 원 대의 이어폰 중에 의외로 이물질 방지 처리가 허술하게 되어 있는 이어폰들이 많다. direm E3의 가격이 3만 원 중후반이란 걸 고려한다면 이어폰 자체의 완성도는 굉장히 높다.
또한 이어팁 역시 만족스러웠는데, Orza라 불리는 번들 이어팁은 dirac mk2부터 도입되어 사용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번들 이어팁 같으면서도 과거 즐겨 사용했던 소니의 이어팁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재질도 소니의 이어팁과 달리 적당히 말랑말랑한 실리콘이라 찢어질 염려는 없어 보인다.
유닛 하단에 위치한 작은 구멍이 보이는데, 이는 제품상의 하자가 아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구멍이다. APAS(Auto Pressure Adjusting System)은 커널형 이어폰을 착용했을 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귀 안의 압력을 낮춰주어 고막이 압박받는 상황을 줄여주는 장치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착용 시 다른 커널형 이어폰보다 귀가 그나마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어플러그를 낀 듯한 귀의 이물감은 그대로 전해진다.
Listening Music
음향 기기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음향 기기의 소리를 빼놓고 글을 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구매 후 약 5일간, 필자는 direm E3으로 일렉트로닉부터 팝, 클래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들어보았다. 또한 틈틈이 지금 작업하고 있는 작업물의 모니터링 또한 동시에 진행했다. 처음 제품을 구매했을 때 가장 우려스러웠던 좌우 편차 문제는 다행히도 필자의 물건에선 발생하지 않았다. 청음 장비는 필자의 휴대폰인 iPhone SE와 오디오 인터페이스, Babyface Pro를 사용하였다. 전문적인 장비가 없어 주관적인 서술 위주로 진행되는 점에 대해서 미리 양해 부탁드린다.
"하단에 서술할 청음 후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1. O2i3 - I need help on my homework!
한국 및 일본에서 자주 활동하는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 Zekk가 주도한 서브컬처 레이블, PAO-WHO Records에서 발매한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Above The World'의 3번 트랙으로, 강렬한 서브 베이스가 인상적인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다. 본 음원을 고른 이유는 '저음만 강력하고 나머지는 뭉툭하게 들린다'는 커널형 이어폰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direm E3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우려는 서브 베이스를 듣자마자 말끔하게 사라졌다. direm E3의 저음과 고음의 톤 밸런스가 생각보다 잘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저음이 고음을 살짝 압도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충분히 밸런스 있는 소리였다.
#2. Machael Jackon - Billie Jean
마이클 잭슨 하면 떠오르는 노래 중 대표를 맡고 있는 그 음악이다. 현재처럼 디지털 방식이 아닌 콘솔을 이용한 믹싱을 91번이나 하였지만 정작 사용한 것은 두 번째 테이크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음향적으로 무척 공을 들인 음원으로, 이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음향적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에 사용된 모든 악기, 보컬 등이 묻히지 않아 프로듀싱 혹은 음향 초심자들에게 레퍼런스 음원으로 추천되곤 한다. direm E3이 들려준 Billie Jean은 보컬이 뒤로 들어가고 대신 베이스와 신스가 앞으로 나왔다. 보컬을 제외한 다른 악기들이 전부 뚜렷이 들리는 점은 과거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트리플 파이의 톤 밸런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보컬만 잘 들렸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3. WyvernP - 눈보라 마왕 (Feat. Serentium)
필자가 속해 있는 한/일 합작 서브컬처 레이블, milkyway TRAXX에서 2018년에 발매한 두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Milkyway : Winter Sound'의 9번 트랙으로 보컬이 가미된 하드스타일 장르의 음악이다. 필자가 보컬 믹스 및 마스터링을 담당한 트랙이기도 하다. 작곡가로부터 전달받은 음원의 30~50Hz에 위치해 있는 서브 베이스를 보강하여 믹스 및 마스터링을 마무리하였다. 필자가 최종 사운드 체크로 사용하던 Apple Earpod과 Airpod은 오픈형 이어폰의 특징상 서브 베이스 대역의 모니터링이 취약해 서브 베이스의 흔적만 들렸는데, direm E3의 경우, 의도하였던 서브 베이스를 제대로 재생해낸다. 그러나 실제로 필자가 의도했던 서브 베이스보다 1~2dB 정도 강조되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저음역대를 강조하는 형태로 튜닝이 이루어진 듯하다.
#4. Johann Baptist Strauss -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 314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왈츠로, 스텐리 큐브릭의 명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삽입되어 대중들에게도 유명한 곡이다. 이번 청음에 사용된 음원은 1967년 헤르베르트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녹음본이다. 스피커로 들었을 때 부드럽게 귀를 감싸는 스트링과 묵직하게 울리는 북, 마음을 뒤흔드는 브라스가 특징인 음원인데, direm E3으로 재생했을 때, 거의 흡사하게 이어폰을 통해서 재생되었다. 다만 100Hz 이하의 저음 대역이 살짝 부스트 되었다는 느낌과 미드-하이(2~4KHz) 대역에서 약간 귀를 쏜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합하면, direm E3은 플랫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나, 보다 음악 감상을 위해 저역대와 고역대가 강조된 일명 V자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어폰이다. 일반적인 음악 감상 시에는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면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지만, 음악 감상이 아닌 믹스와 같은 프로듀싱 환경에서 사용할 때에는 저음역과 고음역이 강조되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작업할 필요가 있다.
Conclusion.
소니캐스트 스토어에 적힌 홍보 문구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음향 표준 이어폰"이라 홍보한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그들이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알 듯했다. 첫 만남은 다분히 실망적이었다. 약간 저렴해 보이는 포장 방식과 이어폰 선이 꺾인 채로 포장되어 있다. 원가 절감이 다분히 느껴지는 포장이라 분명 필자 이외의 사람들 역시 실망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소리를 들으면 그들이 원가를 절감해서 이어폰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소니캐스트는 일반 소비자 제품인 direm E3뿐만 아니라 음향인들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 제품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한국음향협회와의 콜라보 제품인 direm X KASA는 이미 음향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판매가 시작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운드 엔지니어인 토니 마세라티와 같이 협업하여 제작한 고급형 direm은 가까운 시일 내에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필자는 솔직히 아주 기대가 된다. 음향인들을 위한 모니터링 제품들은 대부분 일제 아니면 독일제가 대부분인데 한국산 모니터링 이어폰이 출시된다면 필자는 언제든지 구매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시 direm E3 이야기로 돌아오자. 음악 총평에서 이야기했지만 direm E3은 음악 감상을 위해 저역대와 고역대가 강조되었지만 좋은 톤 밸런스를 보여주는, 일명 V자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어폰이다. direm E3으로 음악을 들을 때 느꼈던 찰랑거리는 고음과 강렬한 저음은 음악을 보다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프로듀싱 등 음악을 제작할 때도 direm E3은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잘 잡힌 톤 밸런스 덕분에 어느 정도의 믹스 작업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 저역대와 고역대가 강조되었기 때문에 따로 EQ를 통해 보정하거나 어느 정도 이어폰의 특성에 대해 인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어팟과 같이 최종 작업물을 체크하는 목적으로 사용 중이다.
"음악은 상대적"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적 취향 및 장르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기본적으로 주는 번들 이어폰에 만족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100만원이 넘어가는 고급 이어폰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한다. 7천 원짜리 편의점에서 구매한 이어폰의 소리가 좋아 그것만 듣는 사람들 또한 있다. 이렇듯 사람마다 선호하는 이어폰들이 모두 다르기에, 이들의 취향을 모두 만족시키는 "스위스 나이프" 같은 이어폰은 대부분 고가의 가격대를 가지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direm E3은 저가형 이어폰 중에서 충분히 "스위스 나이프"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향 작업에서도, 음악 감상에서도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것 같아 무척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