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1. 2. 20:12ㆍLife/Fragrance

한국도 다양한 향수들을 맛보고 즐길 수 있지만 취미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은 더더욱 향수들을 깊고 넓게 즐길 수 있다. 향수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편집샵, Nose Shop Japan이 있을 정도로 취미를 매우 깊게 파고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백화점이 가세한다. 일본의 백화점 중 하나인 이세탄 백화점에서 신주쿠 본점에 남자들을 위한 전문관을 아예 하나 만들었다. 이름도 이세탄 맨즈. 전통적인 수트부터 캐주얼 룩까지 모두 하나의 건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 1층 절반을 향수로 꽉 채웠다는 이야기가 있어 이번 일본 출장 때 시간을 내어 신주쿠에 다녀와 보았다. 신주쿠산쵸메 역과 이세탄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기에 쉽게 갈 수도 있지만 신주쿠 역에서 걸어가도 된다. 이번엔 2번 갔다왔기에 두 가지 루트를 전부 경험해봤다.

이세탄 백화점 본관에도 여러 향수 브랜드들이 자리잡고 있다. 맨즈에는 없는 향수 브랜드(르라보, 디올, 바이레도 등)이 있기에 여유가 된다면 천천히 돌아보는 걸 권장한다.

조금 걸어서 이세탄 맨즈에 도착했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먼저 에르메스가 맞이해 준다. 에르메스 뷰티는 이세탄 신주쿠 본관에 있지만

안으로 조금 더 걸어오면 수많은 향수병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 철수한 세르주 루텐도 거진 전 제품을 시향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미리 뿌려진 시향지가 준비되어 있어 잔향을 체크할 수 있고, 직원에게 문의하여 탑 노트와 미들 노트를 확인할 수 있다. 세르주 루텐의 누 떼 셀로판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특유의 어두운 느낌들을 더욱 많이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여기가 최적의 장소였다. 시향지에 한참 코를 박은 결과 라 휘르 드 베흘랑이나 로르프린느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번에 들일 수 있으면 들여봐야겠다.

백화점에 가면 만나볼 수 있는 톰 포드도 여기선 자유롭게 시향할 수 있다.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지만 톰 포드는 한국에서 유난히 깐깐하다는 인상이었는데, 일본은 상대적으로 프리한 느낌이라 너무 좋았다. 패뷸러스도 검열 전 네이밍으로 붙어 있는걸 보고 일본은 다르구나 싶었는데... Fig는 여전히 검열된 상태였다. 검열본이 더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은근히 외국인들이 자주 들렸던 코너였다. 톰 포드의 라인업에선 투스칸 레더나 오우드 보이저가 내 취향이었다.

벽면에 있는 향수들은 별도의 시향지가 없어서 잔향 체크는 할 수 없었지만 직원의 도움으로 시향이 가능했다. 최근 더현대 서울에 들려서 마음껏 시향했던 팬할리곤스의 향수들이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특유의 동물 머리 미니어처 사이즈도 판매 중이었는데, 미니어처 세트 가격이 거진 향수 본품과 다름없어서 포기했다. 어차피 마음에 드는 건 하나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이번 목적, 킬리안의 리큐르 컬렉션 중 가장 비주류인 녀석을 시향하러 왔다. 피에브르 베르트라 불리는 이 향수는 압생트에 설탕을 떨어뜨려 마시는 느낌을 향수로 구현했다고 한다. 실제로 향을 맡아보니 그 향이 느껴졌다. 다음에 들인다면 이 향수지 않을까.

그 밖에도 극히 최근에 한국에 들어온 브랜드의 향수나 못 봤던 향수들도 있었다. 일본이 확실히 굴러가는 판 자체가 크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종 마르지엘라 프래그런스 라인도 충실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도쿄 한정 향수 Letter Never Sent도 있었는데, 이건 원래 구매 리스트에 있었다가 잔향 때문에 포기했다.

게다가 마침 연말이 가까워진 때에 방문했기에 특별 패키징도 볼 수 있었다. 레이지 선데이 모닝과 재즈 클럽만 특별 패키징이 되어 있던데, 생각해보니 이 둘이 제일 베스트셀러였지 참.

향수를 좋아한다면 신주쿠 이세탄 맨즈는 꼭 방문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 한국에서 흔한 향수들도 있지만, 일본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향수들을 자유롭게 시향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한국도 향수 산업이 커졌기에 거의 전문관에 준하는 환경은 천천히 구축되고 있지만, 아직 일본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향수만으로 이렇게 구성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결단이 필요했을까.

다음번에도 일본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다시 들려보고 싶을 정도로 매우 인상깊었다. 2층의 꼼데가르송 프래그런스도 생각보다 인상 깊었기에 컬렉션 보강을 위해 재방문하지 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번엔 총알 많이 모아서 방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