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milo VA108mac

2018. 12. 9. 02:28Journal/RE:Vu

 맥북 프로를 사용하고 있는 필자에게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할 날이 오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미 애플 유선 키보드를 메인 장비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키보드를 살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가에 올라가서 장기간 Microsoft Comport 3000으로 작업하자니 여간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우선, 예전엔 무척 편했던 인체공학적 요소들이 작업에 들어가자 무척 거슬리는 요소로 바뀌었다. 이미 필자의 손은 표준 키보드 배열에 적응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키보드다 보니 배열이 윈도우 친화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매킨토시에서는 모든 작업을 Command 키와 함께 하는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키보드에서는 Window 키가 해당된다. 고로, 복사나, 저장 등 필수적인 단축키를 사용하려면 힘들게 윈도우 키를 눌러야만 했다. 하필 외주가 끼어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키보드를 구매할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조건은 단순했다. 매킨토시와 윈도우 환경 모두에서 사용 가능한 키보드고, 텐키가 달린 기계식 키보드여야 했다. 텐키리스 기계식 키보드는 많았지만 필자는 반드시 텐키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필자가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의 기능들이 텐키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졌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Varmilo 사의 VA108mac이다.

Varmilo는 예쁘고 괜찮은 기계식 키보드를 만들기로 유명한 중국계 회사다. 다만 국내 키보드 매니아 중에서는 이 회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전에 이 회사가 국내 키보드 전문 회사인 레오폴드 사의 키보드를 OEM생산했는데, 알고보니 본사의 허락 없이 임의로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의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키보드의 퀄리티는 괜찮은 편이다. 키보드 매니아 사이에서는 괜찮은 디자인과 적당한 가격, 다양한 키보드 라인업으로 입문자들에게 추천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자체적으로 키캡도 제작하고 있는데, 승화인쇄 방식 PBT를 사용한다.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108키 배열 mac 전용 기계식 키보드를 제작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가 이 회사를 선택했다. 필자가 구매한 VA108mac 적축 모델의 가격은 14만 9천원이다. 2018년 7월 초에 구매했으며, 현재 작업실의 메인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다. 

 주문은 한 순간이었고, 배송은 수십 년 같았다. 15만원이라는 큰 돈은 이틀이 지나서야 작은 상자의 형태로 배달되었다. 생각보다 박스가 묵직해 튼튼할 거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다만 한편으로 누르스름한 표준 규격의 박스의 색처럼 마음에 밀려오는 후회감은 탁하고 짙었다.

 그러나, 박스를 가르자 나타난 새하얀 자태에 탁했던 후회감은 마치 삼다수처럼 투명하고 눈처럼 하얗게 빛났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새 키보드를 사는 거구나. 박스 위에 굴러다니는 Caps Lock 키캡은 사은품인지, 원래 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킵해두었다.

 박스의 우측에는 사용된 축과 LED의 색상, 그리고 키보드의 레이아웃이 스티커 형식으로 붙어 있다. 어차피 VA108mac은 선택의 여지 없이 화이트 레이아웃이 적용된다. 다만 축의 경우, 보다 조용하지만 비싼 사일런트 적축 대신 싸고 보다 시끄러운 일반 적축을 선택했다. 솔직히 둘의 차이는 아직도 모르겠다. 적축을 선택한 이유는 별 거 없다. 지금껏 청축만 사용했으니 적축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비닐 포장을 걷어내자 하얀 스티로폼 덮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밑에 키보드가 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두근두근하다.

 덮개 밑에는 예상대로 아름다운 자태의 하얀색 풀배열 기계식 키보드가 나를 맞이하고 있다. 그 옆에 USB 케이블과 키캡 리무버가 자리잡고 있다.

 구성품은 단촐하다. 설명서, 키캡리무버, 키보드 덮개, 그리고 미니 5핀 금도금 케이블이다. 키보드 덮개는 무척 저렴한 플라스틱 소재였던지라 일부가 깨져 있었고, 그래서 갖다 버렸다. 키캡 리무버는 기존에 사용했던 플라스틱 구조가 아닌 철사형이라 내구도는 훨씬 약해 보였지만, 오히려 키캡에 손상은 주지 않아 맘에 들었다. 그리고 교체 가능한 USB 케이블은.... 생각보다 퀄리티가 괜찮다. 특히 저 벨크로 테이프가 마음에 들었다. 풀어지지 않는 고급 벨크로 테이프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본체는 고급 비닐에 감싸여 있었는데, 이는 이전에 필자가 사용했던 싸구려 기계식 키보드와는 다른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키보드는 아름답다. 때 잘 타게 생긴 하얀색 바디에 하얀식 키캡이다. 칼라 매칭은 매킨토시와 완벽하게 매칭된다. 다만 고급스럽게 보이겠다고 나무 물결 무늬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청소 용이성은 그렇게 좋지 않다. 비닐을 뜯고, Caps Lock 키를 바꿨다.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키는 하단의 LED 투과가 안 되어 활성화가 되었는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이거 써봤는데요...

 VA108mac을 필자의 작업실로 들고 와 배치했다. 적축이 필자의 키보드 타법과 안 어울릴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손에 잘 달라붙는다. 독수리도 아니고 정석도 아닌 짬뽕타법인지라 처음에 고려를 많이 했다. 손가락에 가해지는 부하도 생각 외로 적었다. 디자인적으로도 무척 만족스럽다. 디자인 좋기로 소문난 애플 유선 키보드의 빈 자리를 잘 채워주고 있어 다행이다. 역시 매킨토시에는 매킨토시 전용 키보드 레이아웃이 가장 잘 어울리는 법이다. 글 작업 능률도 이전보다 많이 증가한 거 같은 느낌이다. 분명 기분 탓이겠지만 아무튼 만족한다. 키보드 사운드가 궁금하다면 다음 타건 영상을 참조해보자.

 다만 특정 부분에서는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F5키와 F6키에 할당된 기능키 고정이 있다. 보통 기능 키라 하면 Fn 키와 누름으로서 부가적인 음악 컨트롤 및 App 실행 등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키를 말한다. 그러나, VA108mac의 경우, 다른 기능 키들은 Fn과의 조합을 통해 잘 작동하는데, 유난히 F5와 F6만은 예외다. 이 키들은 키보드의 LED 조명을 담당하는 기능들이 할당되어 있는데, 이들을 누를 경우 키보드 본연의 F5나 F6이 아닌 키보드의 LED조절이 먼저 작동된다. F5를 자주 사용하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무척 짜증날 수도 있다. 이는 펌웨어 변경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이 문제가 해결될 지 의문이다.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VA108mac은 체리 적축에 체리식 스테빌라이저를 사용한다. 저가형부터 고가형까지 아우르는 표준 사이즈인 체리 규격은 앞으로 필자가 키캡질을 할 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필자가 좀 신기하지만 불편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키캡이다. 왜냐하면 VA108mac의 경우 키캡에 키가 투과되는 게 아니라 키캡 주변에서 빛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마치 LED가 키캡 사이로 스며든 것 같다. 대부분의 기계식 키보드들이 투과식 키캡을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좀 특이하다. 사실, 필자는 이러한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글자를 보고 쳐야 할 경우에 무척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참 간사해서 밝은 게 먼저 보이는데, 상대적으로 어두운 키캡의 글자가 얼핏 봤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감성 때문에 기능성 일부를 희생한 사례라고 본다. 물론 키캡도 여기에 한 몫 했겠지만.

Conclusion!

VA108mac은 풀사이즈 키보드를 원하는 매킨토시 사용자에 있어서 단비 같은 존재다. 그 이유는 매킨토시에 몇 없는 풀사이즈 기계식 키보드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컴팩트함을 추구한다고 해도 아직까지 풀사이즈 키보드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대다수의 회사들이 윈도우 레이아웃이 들어간 키보드를 만드는데, 매킨토시 전용 기계식 키보드이고, 풀 사이즈에 대응해 유선 키보드를 대체할 만한 물건은 사실상 VA108mac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필자에게 텐키리스 키보드를 쓰되, 텐키 키보드만 따로 사용하라는 의견을 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엔 디자인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아 애플 유선 키보드만한 깔쌈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이건 애플빠의 쓸데없는 고집인 셈이다.

 말이 주저리주저리 길었지만 결론은 이거다. 이쁘고 괜찮으니까. 그리고 매킨토시 레이아웃을 가졌으니까. 가격? 약간 비싸긴 하지만 15만원 정도면 중급 키보드 가격이지 않는가. 당장 숫자 키보드가 달린 매직 키보드[각주:1]보단 저렴하다. 그거 살 돈으로 이거 산 거라고 생각하자. 음음.

  1. 숫자 키가 달린 매직 키보드 가격은 149,000원이다. 그레이 색상의 경우 169,000원으로 올라간다. [본문으로]